새로운 시작
씨앗이 움터서 꽃을 피우지 못하면 그 씨앗은 불행하다. 이 같이 모든 존재는 저마다 꽃을 피우기 위해 한 세상을 살고 열매를 맺는다. 봄이면 꽃이 피고 꽃망울을 터뜨린다. 우리도 마음의 꽃 터뜨림, 마음자각을 시작하자. 꽃이 피어 열매를 맺듯 마음각성이 있어야 존재의 진정한 행복을 살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존재와의 어울림으로 완성된다. 마음각성은 세상 속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평화로 이어진다. 뭇 생명과 어울려 살 때 그것이 사람됨의 길이다. 대지가 씨앗을 품고 하늘이 꽃향기를 안고 향기로워 지듯 우리는 세상 속 존재이며 그 세상을 향해 다함없이 나를 꽃피우듯 우리 함께 마음의 꽃눈을 틔어 보자.
세상은 변화와 변화로 흘러가고 문화로 함께 이어진다. 변화를 사는 자는 변화를 이끌어가고 문화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마음을 바꾸면 사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제 그대에게 말하고 싶다. 좋은 이와 함께 가는 산이 좋은 산이듯 맑은 영혼을 지닌 마음 벗과 같이 길을 떠나자. 그 길은 바람불어도 마음향기 어지럽지 않고 맑은 향기 그윽하다.
삶 전체가 괴롭지는 않다. 우리가 사는 이 푸른 별의 삶은 언제나 변화해 왔다. 우리가 나의 작은 에고(ego)를 버리고 세상과 일상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변화의 중심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다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우리 삶 전체가 행복하지도 않다. 다만 우리는 괴로움에서 행복으로 가기위해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자유와 행복이 우리 삶의 최고가치다.
행복은 자기변화에서 시작한다. 이기적 욕망, 적대적 분노, 주관적 편견을 놓아 보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욕망의 극단에서 외발로 선 채 가망없는 거짓 행복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국인 다섯 명 중 네 명이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는 세계 최고수준이고 업무 스트레스는 폭발직전이다. 대학입시, 졸업 후 취업, 내 집 마련이라는 한국에서 보통사람의 삶의 주요과정이 모두 스트레스다. 이 전염병은 분노의 억제로 발생하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울화병이기도 하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이 울화병을 한국 민속 증후군으로 소개하면서 「hwa-byung」 란 용어로 등재한다.
세계보건기구와 하버드대는 2020년 인류를 괴롭힐 3대 질병 중 우울증을 꼽고 있다. 세상살이가 어려워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우울증이 늘어나는데 자살자 80%가 우울증 환자고 최근 하루 평균 35명 정도가 자살한다. 2002년 전 세계 인구 중 250만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니 이 규모는 내전이나 국가 간 무력충돌로 인한 살상자보다 규모가 크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인간은 외부의 자극적인 감각에 빠져 잠시 도피하려 하거나 도피수단이 제공하는 쾌락에 몰입하려 한다. 그러나 과도한 집착으로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일, 술, 약물, 담배, 컴퓨터, 도박, 쇼핑, 섹스 등 우리가 사는 시대는 누구나 가벼운 중독경계에 있다. 더구나 인터넷 중독은 IT강국이라는 한국의 경우 청소년 100만 명 성인 100만명 정도가 중독상태라고 한다.
스트레스, 우울증, 중독과 같은 심각한 마음증세가 우리 삶의 괴로운 현상으로 나타난다. 괴로움은 이유가 어떠하든 두려움, 분노, 슬픔, 혐오라는 부정적 감정을 불러 일으켜 마음공간을 오염시키거나 위축시킨다. 외부문제가 마음내부로 옮겨와 신체적, 정신적 이상으로 집약된다. 우리가 괴롭다고 느끼는 순간 고통감각이 이미 우리 몸과 마음을 구속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나 문화는 이제 금도를 넘어선듯하다. 사회는 더 이상 인간적 성숙을 가져다주는 경험의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 오직 욕망의 전장같다. 보람있는 일, 아름다운 사랑과 연대, 지혜로운 배움의 터가 아니라 이웃과 동료와 겨우 싸워 이겨내 저 하나 간신히 지켜가는 위험한 정글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고통스러운 삶인 줄 알면서도 그것에 매여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살자고 우리 모두 합의한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새로운 문화가 공감을 불러 일으켜 우리가 잃어버린 삶과 인생의 감동을 되찾아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 삶이 「욕망 더하기, 분노 곱하기, 편견 제곱」 이었다면 이제부터 우리 삶은 「괴로움 빼기, 자비 나누기, 공존의 소인수 분해」 와 같은 문화가 시작돼야 한다. 이제 우리가 기대고 있는 삶의 지렛대를 바꿔야 한다. 욕망과 분노와 편견이 삶과 나의 힘의 원천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를 구속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 부정적인 마음 에너지다. 그 에너지에 밀리면 오히려 구속된 상태가 더 편안하다고 느끼는 삶의 인과에 얽매이게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괴로움이 구속하고 있으면 이 구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존재의 기본이다. 괴롭다는 느낌은 우리가 구속당하고 있으니 어서 고통으로부터 떠나라는 일종의 신호다.
이 빨간 신호를 보냈을 때 이 구속을 당연한 편안함으로 체념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이 푸른 행성에 사는 존재로서 구속에서 해방돼 그 자신의 본래모습인 자유로운 삶을 살겠는가?
다시 한 번 자기마음을 돌아보자. 그러면 어느 길로 걸음을 내 디뎌야 할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욕망은 문화적 형태로, 거짓 행복이라는 이념으로,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강한 에너지를 지닌 말뚝을 박아놓고 있으므로 자신의 내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욕망을 제거하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음관리 기법이 필요하다.
에고(ego)는 과거의 기억에 바탕두고 이미지(Image)를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생각으로 가상의 것이다. 그 가상의 것에 욕망, 분노, 편견이 집착하고 있으면 우리는 거기에 구속당해 살게 된다.
욕망, 분노, 편견은 이기적이고 적대적이고 주관적인 에고를 만들어 낸다. 이 에고는 진정한 「나」 가 아니다. 우리는 이 허구의 「나」 라는 에고에 갇힌 운명적 존재가 아니라 항상 각성 가능한 열린 존재다. 중요한 것은 「나(자아)」 가 무엇이며 누구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 를 각성시켜 변할 때 나의 존재의 문을 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나」 의 변화가 마음관리 핵심이다. 그 변화는 사람과 세상을 바로 보는 수준이 격상될 때 이뤄진다. 바로 지혜의 힘이 눈을 열어준다.
그래서 마음의 구속, 기억이미지의 구속에서 해방돼 그 자리 거기서 행복찾기, 이 당연함조차도 자기훈련 과정으로 실현돼야 한다. 마음관리 기법은 마음에너지에 기대어 우리를 인식대상에 단단히 집착시키고 있는 마음의 부정적 에너지를 해체해 있는 그대로 자각할 줄 아는 지혜를 회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을 통해 지혜를 길러 각성할 때 우리는 자유인이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마음이라는 가상공간을 지니고 살아간다. 마음공간에는 저마다 기억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은 마음공간이 데이터(data)를 보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유형무형의 정보에 노출된 채 살아가며 이 정보를 내식대로 정리해 마음공간이라는 창고에 기억이라는 형식으로 입력한다. 만약 그렇게 마음공간에 저장된 데이터가 욕망, 분노, 편견 등이 개입돼 저장했다면, 욕망이 해소될 때까지, 분노로 지배할 때까지, 편견으로 자기가 옳을 때까지. 부정적 마음에너지를 흡수한 상태로 살아있게 된다.
인간은 모든 대상을 마음거울에 반영된 이미지를 통해 경험하고 인식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지를 가지는 인식대상과 한 순간도 접촉을 멈춘 채 살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이 이미지를 숙주로 해서 사는 것이 욕망, 분노, 편견이다. 여기서 이미지에 들붙어 기억으로 가라앉아 살아있는 그것을 떼어 내어 해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청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이 청정한 마음을 바탕으로 나와 인생이라는 진실에 비로소 눈을 뜰 수 있다. 비로소 이미지라는 가상대상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사람마음은 「의식에 대한 의식」 인 SATI(알아차림, 念)라는 기능이 있다. 마음거울에 맺힌 이미지와 욕망, 분노, 편견이 결합하는 지금 여기 찰나의 순간에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림」 하는 기능이다.
이 알아차림 기능인 SATI가 마음거울에 맺힌 이미지(像)에 집착하는 힘보다 더 크면 구속에서 벗어나 나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 이미지에 구속되면 마음은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스트레스, 중독, 우울증 등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증세를 지닌 채 살아간다. 이 자유의 크기만큼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알아차림 기능인 SATI가 마음관리 도구로써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핵심 열쇠다.
존재와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가치로 판단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알아차림만 하자. 의미와 싸우면 생각과 언어에 갇히게 된다. 초연하게 돌아서자. 현상과 느낌, 생각이 일어나면 두세 번 「이름」 붙이면서 알아차렸다가 SATI기준점인 배 움직임, 발 움직임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이름붙이면서 알아차림하자. 알아차림 기능인 SATI 힘을 키워야 마음공간에 저장돼있는 욕망, 분노, 편견 등의 집착력을 해체시킬 수 있다. 그러면 마음공간이 맑아진다. 마음공간이 맑아진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욕망, 분노, 편견을 가라앉혔다는 뜻이 아니라 괴로움의 속박에서 해방돼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유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다.
행복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사세요. 행복은 관념도 이념도 아니고 오직 살아가는 동력일 뿐이다. 구속된 채 살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속여서 그것을 행복으로 원하지 않았습니까? 삶의 엔진을 바꾸세요. 고통에서 행복으로, 구속에서 자유로, 그 다음은 당신의 인생을 열심히 가치있게 누리기 바란다.
맑은 마음으로 함께 살기
마음운동
우리는 언제나 세상과 함께 있다.
마음의 씨앗이 움터
푸른 하늘과 한 몸 되듯
우주보다 넓은 마음의 고통에
SATI수행의 청정함으로 회향하자.
세상은 우리다.
맑은 마음으로 함께 사는 공존이
더욱 큰 행복이다.